
연인이 내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누구와 연락했는지 묻고, 자신의 말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속 추궁한다면 어떨까요?
처음에는 질투가 심하거나 성격이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니까 관심이 많은 것이라고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매번 말을 고르고, 혼날까 봐 대답을 미리 준비하고, 무슨 일을 하든 허락부터 구해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연애를 하면서 편안함보다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면 그 관계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다룬 강서 고문 살인사건은 이런 문제를 가볍게 넘길 수 없게 합니다.
2026년 10월 25일 SBS 보도에 따르면, 지난 6월 서울 강서구의 한 반지하 주택에서 28세 여성 임잔디 씨(가명)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집 안 홈캠에는 동거하던 남자친구가 약 3시간 20분 동안 피해자를 514차례 폭행한 장면이 담겨 있었습니다.
부검에서는 갈비뼈 21개가 골절되고 주요 장기가 파열된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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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20분 동안 '514회 폭행'…'국프'의 진실
24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강서 고문 살인사건의 진실을 추적했다. 지난 6월 20일 오후, 동거 중인 여자친구가 의식이 없다며 살려달라는 남자친구의 신고 전화가 접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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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에서 또 하나 주목된 것은 두 사람 사이에 반복적으로 등장한 '국프', 즉 '국가 프로젝트'라는 문건이었습니다.
제작진은 이 문건과 휴대전화 기록 등을 통해 피해자의 일상에 어떤 통제가 있었는지 추적했습니다. 피해자가 현관문 가까이에 있었는데도 탈출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이유 역시 방송에서 다뤄졌습니다.
이 사건과 연결해 소개하고 싶은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2022년 작품 〈앨리스, 달링〉(Alice, Darling)입니다.
이 영화는 연인의 심리적 통제 속에서 점점 위축된 여성이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상황을 다시 바라보는 이야기입니다.
두 사례를 같은 사건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영화는 허구이고, 실제 사건은 구체적인 증거와 수사 내용을 바탕으로 다뤄야 합니다. 다만 연인 사이의 통제가 한 사람의 일상과 판단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이야기하기에는 연결점이 있습니다.
영화 기본정보

- 영화 제목: 앨리스, 달링 (Alice, Darling)
- 제작 연도: 2022년
- 감독: 메리 나이
- 출연: 애나 켄드릭, 카니에티오 혼, 찰리 캐릭, 운미 모사쿠 등
- 장르: 드라마, 스릴러
- 주요 소재: 심리적 학대, 연인의 통제, 친구 관계, 자기 회복
이 작품은 상대방을 때리는 장면만으로 폭력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연인의 말과 행동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친구와의 관계마저 흔들리는 상황을 따라갑니다. 눈에 보이는 상처가 없더라도 관계 안에서 한 사람이 얼마나 위축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줄거리

앨리스는 남자친구 사이먼과 연애하면서 점점 불안해집니다. 사이먼은 앨리스의 행동과 선택을 통제하려 하고, 앨리스는 그의 반응을 걱정하며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조심하게 됩니다.
앨리스는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 시간을 보내지만, 남자친구의 영향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휴대전화로 이어지는 연락과 압박 때문에 친구들과 함께 있는 순간에도 마음 편히 지내기 어렵습니다.
친구들은 앨리스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앨리스가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말하고 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 도우려 하지만, 오랫동안 이어진 관계를 정리하는 일은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앨리스는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조금씩 알아가지만, 상대방의 영향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되찾는 과정에도 두려움과 갈등이 따릅니다.

이 영화는 사건을 해결하는 범죄 스릴러라기보다 한 사람이 심리적으로 위축된 관계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되찾으려는 과정을 다룹니다.
강서 고문 살인사건과 영화가 만나는 지점

실제 사건에서 보도된 내용 가운데 무겁게 봐야 할 부분은 폭행 횟수만이 아닙니다. SBS 보도는 피해자의 휴대전화와 클라우드 기록에서 '국가 프로젝트' 문건과 관련 메시지를 확인했고, 이 자료를 토대로 두 사람 사이의 통제와 처벌 구조를 추적했습니다.
물론 실제 사건에서 피해자가 겪은 일과 영화 속 앨리스의 경험은 다릅니다. 두 사례를 똑같이 놓고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정한 규칙에 맞추지 못하면 비난받거나 처벌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관계 안에 자리 잡으면, 일상적인 판단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함께 살펴볼 만합니다.

영화 속 앨리스는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남자친구의 연락을 신경 쓰고, 자신의 행동을 설명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보내는 일조차 편하지 않습니다.
실제 사건에 관한 보도에서도 피해자가 상대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AI의 도움을 받은 기록과 정체불명의 문건이 확인됐다고 전해졌습니다. 다만 그 기록만으로 피해자의 내면을 모두 알 수는 없습니다.
어떤 감정과 두려움을 겪었는지 외부에서 함부로 단정하기보다, 확인된 기록과 보도를 바탕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제가 중요하게 보는 부분은 통제하는 사람이 관계의 규칙을 정하고, 상대방은 그 규칙을 어기지 않으려고 계속 애쓰는 상황입니다. 연인 사이에 약속을 정하는 것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행동을 일방적으로 감시하고 처벌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서로 합의한 규칙이라면 양쪽 모두 의견을 내고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한쪽만 규칙을 만들고, 한쪽만 상대를 심판하고, 다른 한쪽은 해명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면 건강한 관계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연인 사이의 통제
저는 연애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 중 하나가 상대방의 행동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두려움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연락을 자주 하는 것이 관심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누구와 만나는지 묻는 것도 애정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락이 늦었다는 이유로 화를 내고, 친구를 만나는 것을 못마땅해하고, 상대의 기분을 맞추지 않으면 끝없이 추궁한다면 더 이상 단순한 질투로 넘길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런 행동이 처음부터 심각한 폭력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약속을 취소하고, 말다툼을 피하려고 사실을 숨기고, 또 혼날까 봐 자신의 생각을 접는 일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보다 상대가 무엇을 싫어하는지부터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이런 행동이 모든 관계에서 같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관계의 상황은 저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두렵고, 거절할 자유가 없고, 자기 행동을 끊임없이 해명해야 한다면 그 관계를 그냥 사랑싸움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강서 사건에서 피해자가 왜 현관문으로 나가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도 외부에서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습니다. 문이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당시 도망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공포와 통제가 어떤 영향을 줬는지는 당사자가 처한 상황과 확인된 증거를 토대로 살펴봐야 합니다.
폭력을 당한 사람이 곧바로 떠나지 못했다고 해서 그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은 폭력을 행사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주변에서 위험 신호를 발견했다면 피해자를 탓하거나 왜 진작 떠나지 않았느냐고 묻기보다, 안전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영화 감상평

앨리스, 달링의 특징은 폭력을 큰 사건 하나로만 보여주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앨리스가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남자친구의 반응을 걱정하고,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편하게 행동하지 못하는 모습이 이어집니다.
이런 장면들은 통제가 일상 속에 들어왔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보여줍니다. 상대방의 반응을 먼저 걱정하다 보면 자신의 감정은 뒤로 밀리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디까지 맞춰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다만 이 영화는 심리적 학대와 관계 회복을 중심으로 한 작품입니다. 실제 강서 사건의 잔혹한 범행 과정이나 '국가 프로젝트' 문건의 실체를 설명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실제 사건을 이해하려면 SBS 보도와 수사기관의 공식 발표를 별도로 확인해야 합니다.
저는 이 작품을 연인 사이의 폭력을 다룬 영화로 소개할 때, 단순히 무서운 남자친구에게서 도망치는 이야기라고 설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판단을 믿기 어려워지고, 다른 사람의 반응을 기준으로 생활하게 되는 상황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편안함보다 두려움이 크다면,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라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감시하고 벌을 주는 방식으로 유지될 필요는 없습니다.
최종 결론과 평점
강서 고문 살인사건은 연인 사이의 폭력이 어디까지 심각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SBS 보도는 홈캠 영상과 휴대전화 기록, '국가 프로젝트' 문건 등을 통해 피해자가 처했던 상황을 추적했습니다.
영화 앨리스, 달링은 실제 사건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연인의 심리적 통제가 한 사람의 일상과 관계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살펴보게 합니다.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감시하거나 위협하고, 자신의 규칙에 따르도록 강요하는 것은 애정 표현이 아닙니다.
연애 중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의 기분을 항상 맞추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싫다고 거절해도 안전하다는 믿음입니다. 그런 기본적인 자유가 사라졌다면 그 관계를 혼자 감당하려 하지 말고 믿을 만한 사람이나 전문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화 평점: ⭐⭐⭐⭐☆ (4.0/5)
심리적 통제가 관계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차분하게 다룬 작품입니다. 강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는 관객보다는 연인 사이의 심리적 학대와 관계의 변화를 다룬 드라마를 찾는 분에게 더 잘 맞을 수 있습니다.
참고 기사 및 태그
- SBS 뉴스, 「3시간 20분 동안 '514회 폭행'…'국프'의 진실」, 2026년 10월 25일
- SBS 기사 원문 보기
- 영화 정보: Alice, Darling — Rotten Tomatoes